'커플링 coupling'은 우리말로 직역하면'동조화다. 사이좋은 연인이나 부부가 늘 함께 다니듯 경제 현상에서도 비슷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을 커플링이라고 한다. '디커플링 decoupling 은 반대를 뜻하는 접두사 'de'를 붙였기 때문에 탈동조화로 해석한다.
어떤 나라의 경제가 인접한 다른 나라나 보편적인 세계 경제 흐름과는 달리 혼자서 따로 노는 현상을 말한다. 용어 자체만을 해석하자면, 한미 금리의 디커플링'은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변동을 살펴보자.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 금리 변동
미국 연방기금금리는 지난 2003년 말 1,00퍼센트까지 떨어졌다가 2004년 말 2.25퍼센트로 올라간다. 그 후 미국 금리는 두 달이 멀다 하고 줄곧 상승했다. 하지만 한국은행 콜금리는 2005년 9월까지 3.25퍼센트를 유지하며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미국보다 높았던 금리는 2005년 8월 미국이 3.5퍼센트로 올라가면서 결국 역전되는 상황까지 이른다. 한국 금리는 결국 2005년 10월이 돼서야 3.5퍼센트로 올라갔다. 이후에도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은 계속돼 미국 금리는 줄곧 한국 금리보다 0.25퍼센트~1,00퍼센트가 높았다. 한미 금리의 역전 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상황을 다시 지난 2004년 여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한국에서는 한미 금리의 디커플링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다.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되는데 한국만 계속 저금리를 가져가야겠느냐는 논의도 있었다. 참고로 3퍼센트대 금리는 한국 역사상 거의 최저 수준이었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 경기 호황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주택 가격도 줄곧 올라 금리를 높여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저축을 해서 나오는 이자가 집값 상승보다 높다고 하면 당연히 집을 사는 대신 저축을 할 것이고, 따라서 집값은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후 미국은 계속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반대였다. 경기 침체로 인해 개인들이 돈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금리를 올리면 개인들은 더 많이 저축할 것이고, 빚이 많은 사람들은 이자가 늘어나 더욱 소비를 줄일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2005년 9월까지는 계속 3.25퍼센트 금리를 유지한 것이다. 2005년 10월 이후 한국 금리는 미국 금리에 어느 정도 동조화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 수준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한미 금리의 역전 현상에 대한 우려가 더 높다.
'KOR은행'과 'AMERI은행' 이 있다고 해보자. 'KOR은행 예금 이자가 연 4.5퍼센트이고, 'AMERI은행'은 연 5.25퍼센트라고 하면 누구나 AMERI은행에 예금할 것이다. 자연스레 한국에 있는 돈은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자본이 빠져나가려면 세금을 내야 하는 데다, 한국의 시장금리와 미국의 시장금리가 그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어 쉽게 자본이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미국 금리가 계속 높을 경우 한국에 돈을 넣어두었던 외국인들 은 돈을 빼내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원화 강세-엔화 약세, 원·엔 사이도 디커플링
달러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 간의 디커플링 현상도 자주 있었다. 2006년에는 달러화에 대해 엔화가 약세를 보여도-1달러당 바꿀 수 있는 엔화가 많아짐을 의미 -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거나 1달러당 바꿀 수 있는 원화가 적어짐을 의미 서로 상관관계가 없이 들쭉날쭉 움직이는 방식으로 원화와 엔화가 디커플링을 보였다. 대체로 '원화 강세 - 엔화 약세'의 모습으로 디커플링 한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초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0.5퍼센트로 올리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투자를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가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정반대의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났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이자가 싼 일본 엔화를 빌려다가 일본 밖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자금을 말한다. 이로 인해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서 약세를 보이는 반면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원화 약세 - 엔화 강세'가 된 것이다.
이처럼 엔화 가치가 점점 높아지면 일본 돈을 빌려 쓰는 기업과 개인들이 고통을 겪게 된다. 1백 엔당 8백 원하던 것이 1백 엔당 9백 원으로 바뀌었다고 치자. 이자 1백 엔을 갚으려면 이전에는 8백 원만 필요하지만 이제는 9백 원이나 필요하다. 즉, 환차손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중간 부품을 수입하는 업체도 어려워진다. 이전에는 개당 1백엔 하는 부품을 8백 원에 샀다면 이제는 9백 원에 사야 한다. 반면 수출업체는 좋아질지 모른다. 환율 덕택에 상대적으로 일본 제품에 비해 싼 값에 물건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제
인간관계는 '디커플링(파경, 이혼)' 하면 나쁘지만, 경제에 있어서 디커플링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2007년 초 “세계경제가 미국 경제와의 디커플링 현상 때문에 인플레이션 부담 없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골디락스 경제 Goldilocks Economy'를 맞게 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WEF의 '2007 세계경제 세션'에서는 미국 경제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2006년 유럽 경제가 지난 수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난 것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따로 노는, 즉 디커플링 현상 때문이란 지적이 나왔다.
미국은 지속되는 '쌍둥이 적자' -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하는 무역 적자와 정부 세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뜻하는 재정 적자가 함께 나타남을 의미-로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취약하고 동시에 국제수지의 불균형도 심각한 상태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빚을 낸 돈으로 세계 각국의 제품을 소비해줌으로써 세계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골디락스는 경제가 높은 성장을 이루고 있더라도 물가 상승이 없는 상태, 즉 가장 이상적인 경제 상태를 말한다.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소녀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다. 소녀는 곰이 끓인 세 가지 수프,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그리고 적당한 것 중에서 적당한 것을 먹고 기뻐하는데 이것을 경제 상태에 비유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호황을 '골디락스 경제'라 한다.
한은 총재 VS 미 FRB 총재
한국은행 총재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FRB 의장은 한 달에 한번 엄청난 주목을 받는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비록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지 않더라도 그들의 '입' 에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향후 경제 흐름과 함께 다음 달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여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이 너무 무겁거나 모호하게 말해서 도무지 올린다는 것인지 내린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한국은행에서 화폐 발행과 금리 결정 등은 총 7명으로 구성된 한국은행 내 정책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뤄진다. FRB는 미국에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미국 연방은행은 이사회와 12개 연방준비은행,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연방 자문회의, 소비자 자문회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보스턴과 뉴욕, 필라델피아 등지에 산재한 연방준비은행에는 전국 규모 은행들과 일정 요건을 갖춘 주 단위 은행들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FRB는 연방기금금리를 결정하는 것 외에 회원 은행들의 지급준비금 요구사항을 결정하고, 12개 산하 연방준비은행 예산을 심의한다. 1950년에 태어난 한국은행이 1913년에 태어난 FRB보다 훨씬 많은 총재를 배출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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