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모인 FBI 요원과 CIA 요원 그리고 정체불명의 암살자의 서로 다른 목표를 따라가는 영화다. 감독의 전작 <그을린 사랑>(2010), <프리즈너스>(2013), <에너미>(2013)와 일정 부분 닮았으나 꽤 다른 매력 또한 장전하고 있다.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조시 브롤린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문제의식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 드니 빌뇌브의 연출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배가한다.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혼돈의 세계에서 드니 빌뇌브가 본 것은 무엇이고 말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의 그 어떤 살인, 전쟁, 난리법석이 일어 나더라도, 관객인 우린 늘 안전하다고 느낀다. 단지 스크린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절대 현실과 넘나들 수 없는 스크린 너머에서 세상이라 그 폭력에 우린 서서히 무뎌지고 있다. 그 '안전함'을 뛰어넘기 위해 늘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선악의 논리를 넘어, 혼돈스러운 회색논리로 그 안전함을 허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알려진 멕시코의 후아레즈. 마약과 살인으로 점철된 이 도시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적 에너지는 폭발하고 있었다.
멕시코 마약조직 카르텔이 국경지역인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어린이 납치와 살인 등 잔혹한 범죄를 일으키자, 미국은 FBI와 CIA로 구성된 대응팀을 꾸린다. 대응팀에는 FBI 소속 케이트(이밀리 블런트)와 CIA 요원 멧(조슈 브롤린), 그리고 작전 고문으로 투입된 '해결사'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가 합류했다. 이들의 목적은 카르텔의 보스를 추적하고 그를 체포하는 것. 그리고 인구의 20%나 되는 마약 사범을 모두 체포할 수 없다면 카르텔을 미국이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
대략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 범죄조직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관객에게 '이 세상은 안전하게 보일 뿐 이제 안전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카르텔 보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FBI 케이트는 범죄조직 보다 더 잔인한 CIA의 모습을 목격하고 이들과 대립한다. 법 정의와 원칙을 지키려는 케이트, 통치의 범위를 벗어나 버린 범죄 도시 후아레즈를 최대한 통제 가능한 도시를 만들려고 불법과 살인도 마다않는 현실주의자 CIA 멧.
더 무서운 건 이런 일들이 미 정부의 암묵적 동의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합법적인 목적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걸까? 정의를 지키고 싶은 케이트는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 굉장히 무기력하다. 우리는 늘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힘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법과 정의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 각색되었지만, 실제 미국과 멕시코 정부가 벌였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체포 작전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두 번이나 체포했지만 마약왕은 최근 또 탈옥해서 잠적했다.
이 범죄도시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가 무의미하다. 선을 자처하는 CIA마저 규정위반이 일상이고, 허가 없는 총격을 서슴지 않는다. 속된 말로 누가 나쁜 놈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먼저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후아레즈에서 법과 규정은 허울 좋은 장신구에 불과하다. 도덕과 양심은 실체 없는 허구일 뿐이다.
관객은 이 혼돈을 지켜보는 케이트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이입된다. 에밀리 블런트는 몇 마디 대사를 하지 않고도, 특유의 표정과 눈빛 연기만으로 케이트의 불안한 내면을 훌륭히 변주한다.
'시카리오'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있는 치와와 사막을 중심으로 황량하고 건조한 색채로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멀리서 총성이 울리고 목이 잘린 시체들이 길 가에 매달려 있지만, 하늘은 또 무심하게 서로 다른 아름다운 색으로 층층이 물든다. 이러한 모순의 무법 지대를 굉장히 덤덤하지만 아름답게 표현한 영상미와 현실을 바라보는 빌뇌브 감독의 날 선 시선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결국 붙잡힌 마약왕이 CIA가 고용한 해결사 알레한드로에게 말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무섭고, 아름답고, 무기력한 영화다. 오랜만에 대단한 수작을 만났습니다. 추천 꽝!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개떼들의 마이웨이’ (0) | 2020.06.18 |
---|---|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 위플래쉬 리뷰 (0) | 2020.06.15 |
“프로이트가 말했죠. 사랑과 일, 일과 사랑 그게 전부다.” 영화 “인턴”리뷰 (0) | 2020.06.09 |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영국의 시간에 국민과 함께 희망의 불빛을 밝힌 윈스턴 처칠 “다키스트 아워” (0) | 2020.06.09 |
9/11 그 이후, 반드시 잡고 싶었던 단 하나의 타겟! “제로 다크 서티” (0) | 2020.06.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