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은 좋아

스티비 레이 본은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이자 수 많은 기타 키드들의 히어로.

by dramagods99 2020. 8. 18.
반응형

스티비 레이 본은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이자 수 많은 기타 키드들의 히어로!!


스티비 레이 본은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이자 수 많은 기타 키드들의 히어로인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다.
블루스계의 한 획을 그은 기타리스트중 한명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펜타토닉 스케일 위주의 속주를 보여줬고 흡사 훵크(funk) 기타리스트를 보는 거 같은 화려한 커팅 주법의 대가였다. 또, 당시에 그의 스트라토캐스터가 들려준 톤은 그야말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지금도 스트라토캐스터가 낼 수 있는 소리중의 궁극적인 이상향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전설 그 자체로 표현 될 수 있는 기타리스트다..


비서인 어머니와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석면 노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티비 레이 본은 어렸을때 부터 형인 지미 본 (그 역시도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이 기타 연주 하는걸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자신도 7세부터 기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이런 음악의 대한 관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줬는데, 두 형제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자 이를 신기하게 여겨 손님들을 불러 즐겁게 연주 할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고 훗날 스티비가 회상한다. 어렸을때 부터 선배격인 기타리스트인 버디가이. 머디 워터스 비비 킹등을 듣고 블루스에 심취하여 이들의 음악을 틀어놓고 즉흥연주를 하며 연주자의 감각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에는 적응을 전혀 못하고 매일 정학위기 였던 그고, 음악 이론 수업에는 낙제를 먹었지만 10세 때부터 블랙버드란 이름의 밴드를 이끌어와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때 더 이상 있는게 무의미 하다 생각해 중퇴를 하고 태어날때 부터 쭉 살고 있었던 댈러스 시를 떠나 밴드와 함께 오스틴시로 이주하게 된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점점 자신의 인지도와 명망을 얻게 된다. 이 때는 수많은 멤버 교체와 밴드명까지 개명하고, 해체 까지 겪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마지막에 남은 건 블랙버드 시절부터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과 신규멤버인 드러머 클레이 레이튼이었다. 이 셋은 지금도 널리 기억되는 더블 트러블이라는 트리오 밴드를 이루게 된다.


결성하고 꾸준히 소규모 투어를 다니며 인지도를 차차 쌓아놓고 명망을 얻고있던 더블 트러블이었지만 아직도 전국구의 인기를 얻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었다. 성공의 시발점과 돌파구가 필요하던 이때 의외의 인물이 그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 다름 아닌 데이빗 보위였다. 보위는 레이 본의 기가 막힌 기타 솜씨를 보고 경탄해 마지 않아 자신의 앨범인 Let's Dance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고용했었는데, 이 앨범이 플래티넘 히트 까지 칠 정도로 대박이 나버렸다.
이 예상치 못한 인기를 등에 업은 본은 에픽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데뷔 앨범인 Texas Flood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대박이 나 앨범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인 Rude Mood는 그래미 상을 받을정도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를 끄는 일석이조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이후 라이브 실황 비디오인 Austin City Limits를 내놓는데 여기서 스티비 레이 본의 진정한 진가와 충격적인 연주 실력을 감상할수 있다. 본인은 이때 아직 얼떨결한 성공에 익숙하지 않아 죽을만큼 떨렸던 공연이라고 자평했으나 이 영상에 나오는 밴드의 연주력은 완벽이라고 밖에 표현 할수 없는 명연 그자체이다.
계속 해서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던 더블 트러블은 이후에 내놓는 Couldn't Stand The Weather 앨범도 대단한 히트를 쳐 단독 콘서트가 매진이 될 정도로 규모와 인지도가 커져버렸다.
연이어 Soul to Soul 앨범과 Live Alive 앨범을 내놓고, 존경하는 스티비 원더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도 하고 자신의 영웅격인 알버트 킹과 에릭 클랩튼이랑 합연하는 영광스러운 시절을 살고 있는듯한 그였지만 빠른 성공에 적응을 하지 못한건지 약물과 음주의 유혹에 빠져 지나치게 탐닉해 몸을 망치고 만다. 게다가 이게 악화되서는 죽음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러 응급실에 실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중요한건 무엇보다 음악이란 걸 깨닫고 약물과 담배를 끊고 술도 절제하며 살게 된다.


재활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부활한 스티비는 더더욱 음악에 매진해 블루스 뿐만이 아닌 다른 장르에도 손을 대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한다. In Steps가 바로 그 앨범인데 마지막 트랙인 Riviera Paradise는 그가 재즈에 조예도 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증거. 이 앨범은 결국 후에 그가 생전에 내놓은 유작이 되고 만다.
이후 1990년 9월 27일, 친형 지미 본과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Family Style 앨범 녹음을 마치고 에릭 클랩튼 콘서트에 오프닝 액트로 나선다. 공연을 성공리에 끝마친 후 다음날 헬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스키 슬로프를 미처 보지 못한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안타깝게 명을 달리한다. 향년 35세. 음악적 행보가 기대되던 젊은 뮤지션에겐 안타까운 최후가 된다.


정통적인 블루스를 지향하는 연주자라 사실 펜타토닉/블루스 스케일 이외에 뭘 쓴다는 건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걸 또 진부하다고 할 수 없는게, 그는 당대 블루스 기타리스트중 최고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블루스 스케일이었지만 그 처럼 빠르고 개성있는 연주를 하는 이는 당시에 없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 또한 노트 선택에서 그는 선배들이 이뤄놓은 진부한 릭들을 돌려쓰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있는 프레이즈를 개발해 자기 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평할 수 있다.
텍사스 블루스 대표주자중 한명이다. 실제로 텍사스 블루스하면 스티비 레이 본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 할 정도 (물론 이 지역 블루스의 창시자란 말이 아니다. 그 전에는 티 본 워커도 있고 알버트 콜린스도 있었다). 그 만큼 위에 언급한 스윙을 중시하는 텍사스 블루스를 지향했다. 느리고 서정적이라는 평과 달리 텍사스 블루스는 이 빠르고 신나는 리듬감을 자랑하기 때문에 블루스란 보통 지루하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입문자에겐 더할나위 없이 추천하기 좋은 장르다.


특히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을 지향하는 이들을 좌절케 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비 레이 본인데, 우선 노트가 매우 많아 비록 한음 한음 카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스타일을 흉내내긴 굉장히 어려우며 또 그 스타일을 유지하며 리듬감을 살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 매우 난이도가 높다. 웬만한 속주 기타리스트들도 scuttle buttin' 이나[3] Rude Mood는 어렵게 여기며 또 레이 본만의 리듬감을 살리기에는 굉장한 실력과 감각이 필요하다고 볼수 있다.
사실 속주도 속주지만 그를 빛나게 했던건 그 속주안에서 빛나는 환상적인 리듬감이었다. 특히 셔플 리듬과 컷팅 주법의 대가였는데, 그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 한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은 스티비 레이본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보다는 훵크쪽에 가깝다고 평할 정도. 그만큼 그루브를 잡는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의 벤딩 주법이나 비브라토는 앨버트 킹에게 심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벤딩할 때의 다이내믹과 비브라토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 생전 인터뷰에서도 알버트 킹과 협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는데 실제 협연이 이루어졌으며 그 영상이 남겨져 귀중한 블루스 기타의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가 하는 코드 보이싱은 헨드릭스와 굉장히 유사하다. 또 레이 본이 한 헨드릭스 커버중 voodoo child와 little wing은 원곡을 뛰어넘는 편곡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커버라고 평을 받았다. 기타의 운용법도 헨드릭스와 비슷하게 하는데, 이사람은 오른손 잡이 기타에 왼손 잡이용 브릿지를 달아 트레몰로 바를 위로 가게 셋팅 해 둔다(...) 또 쇼맨쉽과 무대 퍼포먼스가 헨드릭스와 비슷한 면이 매우 많다. 물론 이빨 기타는 안 하지만... 이빨 기타도 한다.
이러한 스티비의 연주 스타일이 후대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왼팔에 스티비 레이 본의 이니셜인 SRV를 타투로 새길 정도로 그를 영웅으로 삼는 존 메이어가 그 대표주자.


사용하던 장비, 그리고 그의 전설적인 톤의 비결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맑고 섬세한 톤으로 경우에 따라 페달을 이용한 드라이브 톤을 사용한다. 스트라토캐스턴와 펜더 앰프를 이용한 맑고 섬세한 톤이라고는 했지만 굉장히 거칠고 투박한 듯한 뉘앙스 또한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굵은 현의 게이지와 강한 피킹 때문일 것이다.


스티비의 메인 기타는 '넘버 원'이라는 애칭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대부분의 곡들이 이 기타로 연주되었다. 이 기타는 특이하게도 스토라토캐스터의 장점인 기타의 각 부분을 교체하여 조립하기가 쉬운 이점을 사용하여, 해당 한 년도의 생산시기에 제작된 기타가 아닌 각각 다른 연도에 제작된 바디,넥,픽업등 파츠가 조립된 기타였다. 바디는 63년형, 넥은 62년형, 픽업은 59년형을 조합하여 구성된 기타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넘버 원'이 59년형 기타라는 오해는 스티비 본인 스스로가 픽업 뒷면에 생산연도가 1959년으로 쓰여있었기에 "픽업이 59년형 픽업이니 기타 또한 59년형 스토라토캐스터"로 스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타 테크니션인 르네 마르티네즈(Rene Martinez)는 조사해보니 각 파츠가 위의 설명과 같이 각기 다른 생산연도의 파츠로 조립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넘버 원'에 사용된 이 '넥' 파츠는 스티비가 이 기타를 사용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그에 따라 몇번 교체가 되었다. 1989년에 '넘버 원'의 본래 넥이 더 이상 수많은 리프렛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 넥이 사용불능에 이르게 되자 자신의 기타 중 '레드' (1962년형 3톤 선버스트 스트라토캐스터녔으나 이후에 펜더의 커스텀 컬러 옵션을 통해 팩토리 리피니쉬를 거쳐 우리가 알고 있는 피에스타 레드 색상의 스트라토캐스터가 되었다)에 장착되어 있던 넥을 조립하여 사용했다. 그다음 해에 뉴저지주 홈델의 '가든 스테이트 아츠 센터'(지금의 PNC 뱅크 아츠 센터)에서 공연이 예정되어있었으나,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전인 상태에서 무대를 구성하는 기둥 지지대가 스티비의 기타들이 보관된 선반 위를 덮쳐버렸다. 그 결과 '넘버 원' 기타가 파손이 나버린 사건이 발생했고, 특히 헤드 부분이 완전히 두 조각으로 쪼개져버린 사고였던 것이다. 그 다음날 밤에 다른 넥으로 교체되어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스티비의 '넘버 원'은 결국 스티비의 사후에 르네 마르티네즈가 본래 사용불능에 이르렀던 넥을 수리하여 다시 조립하였기 때문에 원래 이 기타의 제짝인 넥이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기타는 현재 그의 형 '지미 본'에게 돌아가 있다.


그가 죽은 후인 92년에 펜더에서 내놓은 시그네춰 모델도 이 '넘버 원'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굉장히 낡은 바디에 검은 픽가드, 그리고 피크가드 위에 스티비가 직접 붙여 놓은 'SRV' 의 이니셜, 을 가진 이 기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다. 스티비는 Dunlop에서 나온 6100 점보프렛이나 베이스용 프렛 등을 선호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트레몰로 브릿지로, 왼손잡이면서도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그대로 뒤집어 연주하는 오티스 러쉬나 지미 헨드릭스를 동경했던 스티비는 자신의 기타에도 왼손잡이용 트레몰로 브릿지를 달았다. 트레몰로 암이 위쪽에 달려 있어 처음에는 소매가 걸려 찢어지기도 하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으나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스티비는 굉장히 굵은 현을 선호하는데 그 특유의 강하면서도 두꺼운 톤은 굵은 줄에서 나온대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보통 사용한다고 알려진 게이지는 1번줄부 터 .011~.013, .015~.017, .019~.022(와운드되어 있지 않은, 보통 3번줄과 같은 일반 현), .028, .038, .058 의 세팅으로 1~3번줄은 스티비의 컨디션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있다. 예를 들어 1번줄의 경우, 계속되는 공연으로 피로할 때에는 .012나 . 011을 사용한다. 그리고 굵은 현의 장력을 견디기 위해 브릿지 아래에 다섯개의 스프링을 모두 장착했다. 이러한 굵은 게이지의 세팅은 보통 벤딩이나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스탠다드 재즈 뮤지션들이나 여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매우 강한 손힘을 가진 스티비는 거의 009나 010 정도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있다. [4] [5]게다가 트레몰로 암을 사용하신다. 참고로 리어픽업이 다른 픽업보다 강한 편이었는데, 이는 리어픽업이 원래 감겨야 할 코일 수보다 더 많이 감겨져서 나온, 즉 제조상의 불량품이었다고 한다. 이걸 이용해서 나온게 텍사스 스페셜이라 카더라.
"젊었을 때는 거의 중독된 듯이 더욱 굵은 줄을 찾아다니곤 했었죠. 줄이 굵으면 굵을수록 그 소리가 좋았으니까요. 사용해본 가장 굵은 1번줄이 .017 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미친짓이었어요." 스티비의 영향을 받은 신진 기타리스트들도 역시 굵은 현을 사용하여 그와 같은 느낌을 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존 메이어 같은 경우 과거 .011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몇 년 전부터는 Ernie ball (Regular Slinky) .010 으로 바꿨다. / 크리스 듀어트는 ghs , 케니 웨인 셰퍼드는 Ernie ball (Power Slinky,Cobalt Slinky) .011, 세트를 쓰고 있다.

728x90
반응형

댓글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