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다.
보르도 지역의 포도원 출현은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전적인 켈트 토착민들인 비뛰리쥬Bituriges 가 까베르네 포도품종의 조상인 추위에 가장 잘 이겨내는 비뛰리카 Biurica 를 가져와 그들의 소유지 포도원에 이 품종을 심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보르도 와인이 널리 알려지고 번영하기 시작한 시점은, 1152년 보르도 지방 옛이름인 아끼뗀느Aquitaine 공국의 공작 딸인 알리에노르Aliénor가 장차 영국의 왕이 될 앙리 플랑타즈네 Henri Plantagener와 결혼하면서이다.
이 결합은 막강한 앵글로 가스꽁 Anglo Gascon 공국의 탄생을 알리며 중대한 세력이 되었다.
그때부터 중요한 교역이 시작되는데, 영국은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선명한 색상을 갖고 있다고 하여 '클라레 Clare'라 부르며 영국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음료수인 차rea와 커피, 코코아가 유럽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와인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와인 수출을 위해서는 선박이 필요하였는데 지롱드강 어귀의 보르도 항구는 이런 배들이 접근하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었다.
이 항구로부터 해상으로 와인이 운반되었고 이로 인하여 보르도 포도원들은 영국의 주문에 의한 체계적인 생산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보르도 지역 항구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 시기에는 225리터 통 4개의 분량이 들어가는 900리터 용량의 또노Tommean 에 담아 와인을 수출하였는데 또노는 이후 선박들의 국제적 상품량을 측정하는 배수 톤 단위가 되었다.
영국과의 교류만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17세기에 들어와 네덜란드가 새로운 고객으로 출현하면서 교역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프랑스 남서부 지방 와인의 중요한 구매자 였을 뿐 아니라 상업적·기술적 혁신으로 구매를 촉진시켰다.
네덜란드인들은 다른 형태의 무역으로 많은 와인을 구매하여 오드비 Eaux de Vie 라고 부르는 브랜디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보르도에서는 그때부터 전통적인 끌라레 Clairet뿐 아니라 증류주에 쓰이는 드라이 화이트와인과 스위트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2편에 이어서.......
와인의 왕과 여왕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 https://nunoex1978.tistory.com/m/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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