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왕과 여왕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전제군주 시대의 왕과 여왕은 무자비했습니다. 왕이라 불리는 바롤로는 전통적으로는 피에몬테의 11개 코뮌 생산자가 묶인 바롤로 지역에서 껍질이 얇아 기르기도 힘든 네비올로 포도를 기르고 수확해, 짧게는 3주 길게는 두 달까지 포도 껍질에서 타닌이 흘러나오도록 둔 채 발효시켜 담갔습니다. 작게는 1500L부터 크게는 1만5000L에 이르는 거대한 밤나무 통에서 수년을 숙성한 후에야 병입했습니다.
여왕 혹은 왕비라 불리는 바르바레스코 지역의 네비올로 와인 역시 조금 짧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두 지역의 와인은 네비올로 껍질에서 흘러나온 타닌을 잔뜩 품고 오랜 숙성 기간 동안 밤나무(혹은 슬로베니안 오크) 안에서 수만 가지 향기 및 맛 물질로 보디를 빌드하며 무쇠 같은 강성으로 변모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은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보틀을 앞에 두고도 망설였고. “따도 될까? 아직 사춘기도 안 지난 아이가 나오면 어쩌지?” 보통이 10년이다. 이 강한 와인을 마시려면 사두고도 와인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한 와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어린 빈티지는 음식의 맛을 압도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그러나 그건 오래전 얘기입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일부 양조가들은 묵직한 타닌보다는 플로럴 향의 우아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트렌드에 발맞춰 비교적 작은 프렌치 오크통 등을 도입하고, 나무통 숙성 기간을 줄였고 이탈리아 레드의 왕족들은 부드러워졌습니다. 현재는 바롤로는 18개월, 바르바레스코는 9개월을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게 최저 기준입니다.
총 숙성 기간은 바롤로가 38개월, 바르바레스코가 26개월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왕과 왕비는 한결 상냥한 맛이 납니다. 미디어에 친화적인 영국 왕실의 윌리엄 윈저공과 케이트 미들턴 부부처럼 진중하면서도 흥겹고 유쾌하다는 평을 받고 이탈리아 와인에 정통한 이창근 소믈리에는 “지금 나오는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중에는 아직 어릴 때 마실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어요”라며 “다만 아무리 현대적 바롤로라도 묵직하면서도 레이어가 층층이 쌓여 있고 강성인 듯하면서도 화려한 장미향을 내뿜는 바롤로의 특성은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바르바레스코 역시 특유의 우아함은 포기하지 않았죠”라고 말합니다 콘카 밭의 포도로만 만든 싱글빈야드 ‘바롤로 콘카’로 온갖 상을 휩쓸었던 마우로 몰리노의 ‘마우로 몰리노 바롤로 2015’는 세상에 나온 지 2년밖에 안 된 왕족이지만, 잔에 따르는 순간 아름다운 가닛 빛으로 테이블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특히 마치 오렌지 빛이 나는 듯한 석양 같은 타닌의 질감과 고급스러운 바닐라와 초콜릿의 향취, 목을 넘기고 나면 날숨에서 달이 뜨듯 뿜어져 나오는 장미향이 지나치게 매력적입니다. 16세기에 지어진 양조장에서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카스텔로 디 베르두노의 비앙코 일가는 바롤로 생산 지역인 베르두노와 바르바레스코 생산 지역 양쪽에 최고급 밭을 가진 행운아들이죠. 이들은 카스텔로 디 베르두노의 이름으로 발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모두 생산합니다. ‘카스텔로 디 베르두노 2016’은 바르바레스코의 최소 숙성 기준을 넘긴 18개월 동안 프렌치 오크가 아닌 슬로베니안 오크통에서 숙성합니다.
그래서인지 우아하고 화려한 플로럴 향기를 뚫고 날카롭고 강렬한 타닌감이 느껴집니다. 특히 혀를 간질이는 미네랄의 감각과 항구도시의 공기에서 느껴질 법 한 바다 내음은 며칠이 지나도 계속 생각날 만큼 인상적이죠“바롤로는 남성적이고 바르바레스코는 여성적이라는 수사는 좀 틀린 얘깁니다. 와인의 스타일은 메이커의 특성을 더 크게 따라가기 마련이거든요.” 이 소믈리에의 말입니다.
1. 마우로 몰리노 바롤로 2015. 12만원대.
2. 카스텔로 디 베르두노 바르바레스코. 2016 14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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