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부업을 겸하는 N 잡러'로 변신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N 잡러'는 '다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원래 본업이 따로 있는데 또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소위 '투잡 뛴다'는 말과 의미가 비슷하다. 그런데 요즘은 연봉 수준이 높은 대기업 직원들까지 '투잡' '쓰리잡을 뛴다. 코로나19 이후 불안한 미래에 대한 준비로 해석된다. N 잡러를 겨냥한 일감 알선, 온라인 쇼핑몰 개설 서비스와 세금 신고 서비스 같은 T 서비스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투잡 열풍
연봉 높은 대기업 직장인까지 부업 전선 뛰어들어 3040 대기업 직장인 사이에서 투잡 바람이 거세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자신의 취미·지식·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만의 수입원을 만든다는 점에서, 대리운전·배달처럼 당장 부족한 급여를 벌충하기 위한 '생계형 부업’과는 구분된다. 이전에도 IT(정보 기술) 업체 디자이너나 개발자 등이 홈페이지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을 부가적인 일거리로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장 모 씨는 아내와 함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5년 전 추석을 맞아 지인이 생산한 꿀 세트를 판매한 게 시작이 이었다. 이후 취미로 즐기던 축구와 캠핑 관련 용품을 하나씩 추가해 지금은 취급 품목만 50개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맞춰 판매한 마스크 주문이 몰리며 하루 1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날도 있었다. 덕분에 작년 연간 매출이 20억 원을 웃돌았다. 쇼핑몰 규모가 커지자 장씨의 아내는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쇼핑몰 운영자로 변신했다.
돈 쓰던 취미를 돈 버는 투잡으로
최근 유행하는 부업의 특징은 본업에서 쌓은 역량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에 다니는 김모씨는 올 초부터 온라인 포털에서 수입차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다. 업무를 통해 쌓은 지식과 동호회 활동 경힘을 발판으로 온라인에 매장을 차렸다. 처음 몇 달이 지나자 월 매출은 100만 원 안팎으로 올라왔다. 그는 “제품 포장과 발송은 저녁이나 주말 등 남는 시간을 활용한다”며 “작은 제품 위주라 큰 부담은 없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해외구매팀장인 40대 박모씨는 잘 나가는 명품 온라인 직구숍 사장님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본업에서 터득한 영업 노하우를 활용해 쌓은 현지 거래처와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최대 강점이다. 직구숍 수입은 연봉의 1.5배에 이를 만큼 짭짤하다.
취미를 돈을 버는 투잡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드물지 않다. 중견기업회장 미 서실에서 근무하는 박 모 씨는 대학 시절 PC 통신에 소설을 연재했던 경험을 살려 웹 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순수입이 월 1000만 원을 넘나들자 사무실을 구하고 업로드 담당 직원까지 채용했다. 대기업 패션 계열사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와인에 대한 관심이 많던 대학 농기 2명과 와인 매장을 열었다. 그는 “3명이 분업하니까 매장 운영은 잠시만 짬을 내면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번역·과외 등 외국어 실력을 이용한 사이드 잡도 여전히 인기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중국에서 마친 고모씨는 알음알음 들어오는 중국어 과외와 번역 일로 상반기에만 600만 원 넘게 벌었다.
40대 명퇴 시대… 재택근무 확대도 이유
대기업 직원들이 부업에 나서는 것은 예전과 같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는 시대적 변화가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연봉이 과거만큼 가파르게 오르지 않고, 명퇴 등을 통한 수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대기업 정규직도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대기업의 임금 인상률은 2~3%에 그쳤다. 한 40대 대기업 직원은 “야근해서 연봉 1000만 원을 더 버는 것보다 번역으로 한 달에 100만 원씩 버는 게 더 쉽다”라고 말했다.
사이드 잡 준비 플랫폼으로 알려진 '남의집’ 김성용 대표는 “과거 부모 세대는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했지만, 지금 3040은 그런 길이 막혔다”며 “기성세대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3040은 사이드 잡에 들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투잡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회사의 시야에서 벗어난 직장인들이 더욱 자유롭게 사이드 잡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투잡을 했다는 직장인 비율은 20%를 웃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이 간편하게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난 것도 사이드 잡 열풍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요즘 부업 노하우
직장에서 부동산 투자와 재테크 조언을 잘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최모 과장은 프리랜서 중개 서비스 '크고'에 자신의 노하우가 담긴 PDF 전자책 두 권을 올렸다. 각각 '직장 초년생을 위한 첫 집 고르는 법’ 이벤트로 금융사 포인트 챙기기'라는 제목이다. 또한 비슷한 서미스인 '숨고’에는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이용한 비대면 강의와 상담 코니를 열었다. 지난 석 달간 110만 원을 벌었다.
N 잡러 돕는 서비스 늘고 있어
최 씨와 같은 N 잡러를 겨냥한 일감 알선, 온라인 쇼핑몰 개설 서비스와 세금 신고 서비스 같은 IT 서비스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디자인·IT 프로그래밍 영상편집 같은 다양한 파트타임 일거리를 알선해주는 크몽이나 숨고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크고은 코로나 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3월 10만 개가 조금 넘던 등록 서비스 수가 현재 25만 개까지 늘었다.
“과거에는 전업 프리랜서가 대부분이었는데, 직장인들이 프리랜서로 등록하면서 전문가가 크게 늘었다”
48시간 내 원하는 서비스를 매칭해주는 숨 고의 등록 전문가 57만 명 중 절반 이상이 N 잡러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N잡 시장에서는 강의'의 인기가 뜨겁다. 주식 ·가상화폐·부동산투자부터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하는 법까지, 가르칠 수 있는 건 전부 가르치는 식이다.
크몽은 지난 3월 아예 논 버는 강의나 책을 팔 수 있는 '머니플러스'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크몽에 올라와 있는 강의 관련 전자책만 2000여 권에 달한다. 노하우 공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비스도 있다. '해피 칼리지'는 업무 기술, 취미, 경험 등을 전자책, MP3 파일로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했다. 현재 1400명이 3200개 클래스를 열었고, 누적 수강생은 2만 8000여 명에 이른다.
쇼핑몰 창업부터 세금 납부까지 IT로
온라인 쇼핑몰도 직장인 부업으로 인기다. 네이버의 쇼핑몰 서비스인 스마트스토어에는 지난해 3월 이후 월평균 3만 3000개의 쇼핑몰이 새로 생겨났다. 이전보다 50% 이상 늘어난 수치인데, 네이버는 이 중 상당수가 직장인 부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 스토어의 강점은 상품을 직접 소싱하지 않고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물건을 자신의 쇼핑몰에 연동해 놓으면, 판매·배송·고객 응대를 전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가 해준다. 쇼핑몰 플랫폼 '메이크샵'을 운영하는 코리아센터도 지난해 3월 무재고 창업 서비스 '쉽투비'를 출시했다. 현재 4000곳 이상 온라인 쇼핑몰이 쉽 투비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N 잡러를 위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도와주는 서비스도 있다. AI(인공지능) 세무회계 스타트업 자비스 앤빌 런즈의 '삼 쩜 삼'은 1년 만에 세금 환급액 700억 원을 돌파했다고 최근 밝혔다. 57만 명이 인당 평균 12만 4500원을 환급받아 간 것이다. 서비스 이름은 프리랜서 종합소득세율 3.3%에서 착안했다.
“보통 N잡러는 일반 직장에서처럼 조직이 알아서 세무관리를 해주지 않다 보니, 세금 신고 기간을 놓쳐 과태료를 물거나 세금을 놀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삼 쩜 삼은 웹이나 모바일 사이트에 접속해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면, 자신이 얼마나 세금을 더 냈는지 혹은 덜 냈는지를 단번에 조회해준다. 이달 종합소득세 정기신고 서비스가 시작된 후, 일평균 6만 3000명이 가입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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