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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요약본

by dramagods99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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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요약본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김선형옮김, 홍성사, 2007(2005).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악마 웜우드에게 쓰는 편지.
이 책에서 악마들은 하나님을 '원수'라 지칭하고, 인간들을 자신들이 관리하는 '환자'라고 부른다.
환자를 '우리 아버지'인 사탄에게로 데려가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유혹하고 죄에 빠지게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상황, 나의 습관, 나의 감정,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인간을 꿰뚫고 있는 악마들의 치밀한 노력으로 인해 내가 넘어가버린 것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그 때 마다 다시 돌이키게 된다. 그들의 원수이자 나의 진짜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도 다시 또 같은 죄를 반복하지만 그 때 마다 이 책의 내용들이 떠올라 다시금 제자리를 돌아갈 의지를 갖게 된다.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


C.S 루이스

2.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다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적어도 그 기도가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은 있지. 고도로 '영적'인 기도만 줄창 읊어대게 하거라. 어머니의 류머티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그 영혼의 상태만 가지고 노심초사하게 만들라구. 여기에는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그는 자기가 어머니의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네 지도만 약간 있으면 어머니가 조금만 자기에게 불편하거나 성가신 행동을 해도 무조건 죄로 여기게 될 게다. 그러면 환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그가 그날 받은 상처를 더 쓰라리게 문질러 줄 수 있지. 이 작전은 전혀 어렵지 않으니 너도 한번 해보면 썩 재미를 붙일걸.
둘째, 환자가 어머니의 영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란 게 워낙 조잡한데다가 틀리기 일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상의 인물을 놓고 기도한다고 봐야 한다. 네가 할 일은 이 가상의 인물을 진짜 어머니-아침 식탁에서 매일 잔소리를 해대는 노인네-로부터 날마다 조금씩 더 멀어지게 만드는 거야.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상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 실제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깊은 틈을 갈라 놓을 수가 있지. 내가 맡은 환자 중에는 아내나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열렬한 기도를 쏟아 놓다가도, 진짜 아내나 아들에게는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곧바로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무척 길이 잘 든 인간들이 있었다. p29-30


잊지 말거라.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그들은 악마가 자기네 마음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불어넣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과업은 그들의 마음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냐.
혹시라도 이 작전이 실패하거든, 그때는 환자의 의도를 좀더 교묘하게 오도하는 술책으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인간들이 원수 자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는 참패를 면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길이 많이 있지. 개중 간단한 방법은 원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시선을 그 자신에게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환자가 제 마음속만 줄창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거라. 환자가 원수의 사랑을 구하려 하거든, 실제로 사랑을 구하는 대신 사랑의 감정을 저 혼자 꾸며 내려고 애를 쓰게 하는 한편, 제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눌치채지 못하게 하란말이지. p36-37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p46



원수는 아무 때나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서 인간의 영혼이 감지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걸 활용하지 않는지 너도 궁금했겠지. 그러나 '불가항력'과 '논의의 여지 없음'은 원수가 세워 놓은 계획으니 본질상 사용할 수 없는 무기임을 이젠 알겠느냐. 단순히 인간의 의지를 제압(원수가 최고로 미약하고 가벼운 정도로만 그 존재를 드러내도 인간의 의지는 간단히 제압당하고 말걸)하는 건 원수의 계획에 도움이 안돼. 그는 강간은 못 한다. 사랑을 호소할 뿐이지. (중략) 피조물과 하나가 되면서도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지니게 하겠다니, 원. p61


이런 상태가 좀더 확고하게 자리잡으면, 쾌락을 유혹의 미끼로 제공하는 지루한 일에서 점차 해방될 수 있다. 불편함 그 자체, 또 불편함을 꺼리는 마음 때문에 진짜 행복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또한 허영심과 흥분과 경박함이 아예 습관이 되는 바람에 쾌락이 점점 시시해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포기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수록(어떤 쾌락이든 습관이 될 때 시시해진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네가 어떤 걸 제공해도, 아니 심지어 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않아도 환자의 산만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될게다. (중략)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를 놓고 '그분 없이는 아무것도 강하지 않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야말고 정말 강하고말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슬쩍할 수 있을만큼 강하지 인간은 달콤한 죄도 못 되는 것,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왜 하는지도 모를 것에 미적지근하니 관심을 보이다 말다 하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어렴풋한 호기심을 채워 보다가, 손장난이나 발장난을 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곡조를 흥얼거리다가, 혹은 흥미로운 욕망이나 야망이 자극된 것이 아닌데도 일단 우연히라도 발을 디디고나면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든, 그 길고도 어둑한 몽상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인생을 낭비한다. 인간이란 그만큼 혼미해지기 쉬운 약한 족속들이야. p85-86


원수가 원하는 건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를 설계한 후; 그것이 가장 좋은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설계했을 때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쁨으로 말이지. 원수는 결국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 옷이 가잔 재능을 볼 때와 똑같이, 해 뜨는 광경이나 코끼리나 폭포수를 볼 때와 똑같이, 자신의 재능 또한 솔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길 바라는 거다.
원수는 그리하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피조물(자기 자신을 포함해서)은 하나같이 영광스럽고 뛰어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인간의 동물적인 자기사랑이야 그 작자도 하루빨리 없애고 싶어 하지. 하지만 원수는 새로운 종류의 자기사랑-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자아를 향한 사랑과 감사-을 회복시키기 위해 장기 정책을 쓰고 있다. 이게 무서운 거지. 이웃을 정말 제 몸처럼 사랑하기를 배운 인간은 저 자신 또한 이웃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최고로 불쾌하고 납득할 수 없는 원수의 특징 때문인데,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될 그 특징이란 바로 그 작자가 자신이 창조해 낸 저 털 없는 두발 짐승들을 진짜로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왼손으로 가져간 것이 있으면 항상 오른손으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수는 인간이 '나의 가치'라는 주제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려고 총력을 기울일 게다. 그는 인간이 자신을 별 볼일 없는 건축가나 시인으로 폄하하려고 애쓰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위대한 건축가나 위대한 시인으로 생각한 다음 그에 대해 잊어버리는 편을 더 좋아할 거라구. p97-98


원수는 인간이 계속 영원에 관심을 갖거나(이건 곧 원수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현재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게다. (중략)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인간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가끔씩 한 인간(이를테면 과부나 학자)을 유혹해서 과거에 파묻혀 살게 하는 것도 아 이런 관점에서 하는 일이야.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지. 이런 치들은 과거에 관한 한 어느 정도는 참된 것을 알고 있는데다가, 과거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원을 닮아 있거든. 그러니 과거보다는 미래 속에 살게 만드는 편이 훨씬 낫다. 인간의 열정은 생물학적 필연성에 따라 앞을 향하고 있는 법이므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희망이나 두려움으로 불붙게 되어 있다. 더구나 미래는 미지의 것이 아니냐. 그러니 미래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곧 비현실적인 허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p101-102


인간들이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다 보면 원수의 바람대로 학생이 되는 게 아니라 비평가가 되어 버린다. 원수가 바라는건, 거짓된 것이나 무익한 것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진정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즉, 자신이 거부하는 대상에 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앞으로 양분이 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토를 달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전적으로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거야. p107


원수의 요구는 딜레마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철저히 금욕하든지 타협의 여지 없는 일부일처제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거지. 우리 아버지께서 첫 번째 대승을 거두신 이래, 우리는 철저한 금욕을 아주 어려운 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일부일처제로 탈출해 나가지 못하도록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여러 통로들을 차단해버렸지. 우리는 시인과 소설가들을 동원하여,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별나고도 대체로 오래 가지 못하는 경험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혼의 근거라고 설득해 놓았다. 결혼한 후에도 이런 흥분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그렇지 못한 결혼생활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였지. 이건 원수의 생각을 패러디한 거란다.p119


원수가 성을 인간 번식의 수단으로 채택한 진짜 동기는, 그가 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다. 성은 우리한테 아주 무해한 것이 될 수도 있었어. 신부가 신랑을 잡아먹음으로써 결혼식을 끝내는 거미들처럼, 단순히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를 먹이로 삼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었따구. 그런데 유독 인간들의 경우에만 성적 욕망을 느끼는 양자 사이에 쓸데없이 애정을 끼워 넣을 게 뭐냐.
뿐만 아니라 원수는,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하게 하고 부모에겐 자식을 부양하려는 욕구를 줌으로써 '가족'이라는 유기체 비슷한 걸 만들어 냈다. 아니, 사실은 유기체보다 더 해롭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은 ㅇ기체보다 더 독자적이면서도 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더 책임감 있게 연합하니까. 실제로 이 모든 것은 어떻게든 인간을 사랑 안에 끌어들이려는 또 하나의 방책에 불과하다. p120-121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자기 재산에서 억지로 떼어 주어야 하는 부담스런 세금으로 여기게 하고, 종교적 의무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너그러운 기부금으로 여기게 하거라. (중략) 인간은 시간 중에서 단 한 순간도 만들어 내거나 붙들어 둘 수 없다. 시간이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 시간이 저희들 것이라면 해나 달도 저희들 소지품이게? p138-139


맞다. 연애기간이란 십년 후 가족 불화로 자라날 씨앗을 미리 뿌려두는 시기지. 아직 욕망을 채우기 전이니만큼 이 기간에는 서로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데도, 인간들은 그런 매력이 낳는 결과가 곧 사랑의 결과려니 착각하기 십상이다. '사랑'이라는 말의 모호한 뜻을 잘 이용하도록. 사실은 아직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문제들을 보류하거나 연기한 상태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사랑의 힘으로 이미 해결했노라고 믿게 해야한다. 이런 상황을 오래 끌어야, 문제들을 은밀하게 악화시켜 고질병으로 만들 기회가 생기는 게야. p169


너는 네놈이 느낀 그 낯선 경외감이 환자의 기쁨에도 찬물을 끼얹었으면 하고 바랐겠지. 그러나 빌어먹을 사실은, 인간의 눈에는 신들이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게야. 놈은 신을 만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존재 자체까지 의심했다. 그러나 막상 신들을 만나는 순간, 자기가 ㅊ음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 혼자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삶의 시간 시간마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주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묻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야. p20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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