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미국이 낳은 보헤미안이었으며 이단아였다. 죽음에 얽매인 듯한 침울한 상념, 기괴하고 악마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아편 복용, 상습적인 음주와 음주벽, 우울증, 도박 등에 그의 생애는 발목이 묶였다. 게다가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미국 문학에서 비주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싸늘하게 외면되기도 했다. 보들레르는 이러한 포의 문학적 성향과 기질에 대해 말하면서 포가 미국을 ‘거대한 감옥’으로 인식했으며, 미국은 그에게 “가스등으로 조명된 하나의 광막한 야만의 나라”였다고 보았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19~1849.10.7)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831년부터 4년 동안 숙모 클렘 모녀와 함께 볼티모어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다 단편소설 현상 공모에 당선되었다. ‘병 속의 수기’(1833)로 인정받아 문예 잡지의 편집자가 되었으나 엄격한 서평 때문에 반감을 사고 물러났다. 1836년 열세 살밖에 안 된 사촌 동생 버지니아와 결혼한 후 리치먼드,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였으나 이 또한 얼마 가지 못하였다. 왕성한 창작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리지아’(1838), ‘윌리엄 윌슨’(1839), ‘어셔가의 몰락’(1839)을 비롯해 최초의 단편집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2권, 1840)를 출판해 작품 속에서 공포, 우울, 불쾌 등의 특이한 정서를 표현했다. 암울한 아름다움이라는 에드거 앨런 포 특유의 감성은 소설뿐 아니라 시에서도 나타난다. ‘헬렌에게’부터 ‘애너벨 리’에 이르기까지 죽음, 미, 우수를 주제로 한 음악적 순수시를 쓴 그는 단편소설의 개척자일 뿐 아니라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빈곤, 주벽, 정신착란, 주위의 반감 속에서 짧은 생애를 보냈으나 그가 근대 문학에 끼친 영향과 공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포의 천재성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도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문단에서였다. 보들레르가 포의 전기를 써서 프랑스 문단에 소개했고, 말라르메가 포의 시 ‘갈가마귀(The Raven)' 등을 번역해 소개한 것은 비교적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포의 추리소설은 공포와 살인 등의 괴기와 분열적 자아에 근거한 호러 픽션이었는데 이는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이탈리아의 단눈치오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탐정소설 탄생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어셔가의 몰락’, ‘윌리엄 윌슨’, ‘검은 고양이’ 등의 작품들에서 노골화되는 복수, 살인, 생매장, 광기, 두려움과 환영 등을 떠올려 볼 때 더욱 그러하다.)
포는 시인, 소설가, 문학 이론가, 편집자 등 다방면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능력을 발휘했다. D.H. 로렌스가 언급한 것처럼 포는 “미국인들의 낡은 인식의 해체 과정과 새로운 의식의 형성 과정”을 탐색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나 포의 일생은 극도로 피폐했으며 비극적인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유랑 극단 배우였던 아버지는 어느 날 행방을 감췄고, 어머니 또한 포가 세 살 되던 무렵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후 포는 숙부인 담배상 존 앨런의 집에 입양되었다. 순조롭지 못하게도 숙부와는 원만한 인연을 맺지 못했다.(포의 이름이 에드거 앨런 포가 된 것도 숙부인 존 앨런에게 입양된 연유에서였으나 그의 숙부는 포에게 단 한 푼의 유산조차 남기지 않았다.) 포의 형은 삶에 낙망하여 선원 생활을 하다 동료와의 싸움 끝에 젊은 나이에 죽었으며, 누이동생은 지적 장애로 생애의 대부분을 보호소에서 지냈다.
포에게 유일하게 정신적 위로가 된 사람은 버지니아 클렘(Virginia Clemm)이었다. 포는 스물여섯 살 때인 1835년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클렘은 열세 살이었고 포와는 사촌 사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클렘은 1842년 병을 얻어 급기야 결핵으로 병세가 악화되었고 5년 동안 극도의 고통 속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1847년 사망하고 말았다. 포는 아내의 무덤가를 배회하며 통곡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아내의 사망 이후 포의 건강도 악화되고 생활 여건도 피폐해졌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두 해가 지나고 포 또한 이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시 ‘애너벨 리(Annabel Lee)'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이면서 포가 쓴 마지막 시이기도 하다.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을 영혼의 결합을 통해 초월하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면에서 이 시는 낭만적 사랑 시에 해당하기도 한다. 독백과 고백의 화법을 차용한 이 시는 시적 화자인 ‘나’와 소녀 ‘애너벨 리'와의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표면에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밖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순연하고 열정적인 사랑이었으며, “사랑 이상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의 시샘이 둘 사이의 사랑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파국에 이르게 한다. ‘천사’를 앙심을 품은 존재로 격하한 데에는 평소에 포가 신적인 존재에 대해 공공연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일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포는 “이 우주에 나보다 우수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천사들이 애너벨 리로부터 체온을 빼앗아 서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더라도 ‘나'의 애너벨 리에 대한 사랑은 끊어 놓지 못한다. 이들의 사랑은 연장자들의 사랑이나 사리에 밝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훨씬 강하게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애너벨 리는 ‘생명'이며 ‘천체'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을 때 각별히 주목되는 특질은 음악적 효과에 있다. 포는 시에 있어서의 음악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았고 “아름다운 음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지상 무한의 개념 작용”이라고 말했는데 이 시에서도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작시의 주요한 규율로 작동한다. ‘애너벨 리'라는 호명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되면서 시에 율동을 생성하고 있다. 이것은 포가 또 다른 그의 대표작인 ‘갈가마귀'에서 “이젠 끝이야(Nevermore)”라는 시어를 반복한 사례와 마주 닿아 있다. 죽음의 세계, 혹은 명부(冥府)와 지옥의 암울한 색채를 이 음악적 율동과 대비시키면서 포는 묘한 시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포는 불과 마흔 살의 나이로 이 세상과는 영원한 작별을 했다. 술에 만취해 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병원으로 옮겼으나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몰하고 말았다.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신이시여, 내 불쌍한 영혼을 돌보소서!”였다. 그는 “내키는 대로의 기분, 충동, 고독에 대한 갈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가장 간절한 욕망 속에서의 현재의 모든 사물에 대한 냉소”가 자신의 생애의 대강이라고 스스로 적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사후에도 한동안 편협한 견해, 개인적 앙심으로 가득찬 오독에 시달렸으나 종착에는 문제적이고도 천재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애너벨 리
에드가 앨런 포
여러 해 여러 해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애너벨 리라는 이름의
한 소녀가 살았었다ㅡ
이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게서 사랑받는다는 것 외로
딴 생각은 없이 살았었다.
나는 어렸었고 그녀도 어렸었다.
바닷가 이 왕국에서.
그러나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ㅡ
천국의 날개 돋친 천사들도
시새우는 사랑으로.
이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오래전
바닷가 이 왕국에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 나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히 얼리고,
그녀의 천사 친척들이 와서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가
비닷가 이 왕국의
무덤 속에 가둬버렸다.
왕국에서 우리의 반도 행복지 못한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새운 것이다ㅡ
그렇다ㅡ그것이 이유였다(바닷가 이 왕국에서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래서 밤에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 나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 그것은 훨씬 굳세었다,
우리보다 나이 들은 이들의 사랑보다도ㅡ
우리보다 현명한 이들의 사랑보다도ㅡ
그리고 위로는 천국의 천사들도
밑으로는 바다의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에서
결코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달 비칠 땐 언제나 내게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생각이 떠오르고
별 솟으면 언제나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느낀다.
그래서 밤새도록, 나는 여기 누웠노라,
바닷가 무덤 속 거기
철석이는 바닷가 무덤 속 거기 있는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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