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컴퓨터의 아버지. 2차대전 승리의 숨은 공신 앨런 튜링
인간이 동물보다 대단한 이유는 도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까마귀나 원숭이 같은 동물도 도구를 이용하지만 만들지는 못한다. 구석기 시대 이후 인간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도구는 인간이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편하게 해주었고 생각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기술이 발달하여 이제 인간 대신 생각해 주는 도구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1940년부터 1950년대까지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상상했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의를 해왔다. 사람 대신 생각해 주는 기계가 만들어지기 전 인간 대신 계산해 주는 기계의 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국 출신의 앨런 튜링은 인간 대신 계산해 주는 기계인 튜링 봄브를 만들었다. 2차 대전 연합군은 나치 독일군에게 승리하기 위해 정보전을 수행했다.
1939년 앨런 튜링은 독일군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팀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앨런 튜링이 혼자 튜링 봄브를 만든 것은 아니고 레예프스키, 지칼스키, 루지츠키등 20명 이상의 수학자 들이 참여했다. 튜링은 노력파라기 보다 천재에 가까웠다 어릴 때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 바로 고등학교 수준의 미적분 문제를 풀 정도로 지능이 좋았으며 최고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했다.
1936년 앨런 튜링은 재학 중 노이만형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라는 논문을 쓰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폰 노이만과 만나게 된다. 폰 노이만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라는 것을 개념화 한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다. 앨런 튜링은 1939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튜링 봄브를 만들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전자 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든다.
콜로서스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최초의 전자 컴퓨터다.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정보전에서 영국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암호기 애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한 튜링봄브와, 콜로서스가 정보전에서 완승했기 때문에 독일군과 일본군의 우수한 군 병력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여 전략적, 전술적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최고 전력이 바로 컴퓨터라는 것이다. 1950년 앨런 튜링은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여부를 기준으로 기계의 지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하는 현대에 튜링 테스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행하게도 그는 동성애로 인한 여성호르몬 투여라는 형벌을 받아 자살하였는데 이후 명예 회복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최후를 안타까워했다.
전쟁이 선포된 1939년, 영국의 블레츨리 라디오 제조공장에서는 비밀리에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면접관인 데니스턴 중령은 여느 때처럼 퇴짜를 놓으려고 하는데, 27살의 교수 앨런 튜링은 나치의 에니그마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이 비밀 면접의 목적이 에니그마를 해독할 사람들을 뽑는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면접을 통과한 앨런과 다른 천재들은 팀을 이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앨런은 그들과 사소한 것으로도 부딪치며 무시당한다. 하지만 앨런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한다.
전쟁이 끝난 1951년, 앨런 튜링의 자택에 도둑이 들어 경찰이 조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집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하지만 분실한 것은 없다고 했다. 앨런의 행동에 왠지 모를 수상함을 감지한 경찰은 그의 신원을 조회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군사 기록은 기밀이라 접근할 수가 없었다.
얼마 뒤 앨런은 집에 도둑이 든 사건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체포되어 경찰서에 온다.
암호 기계 에니그마는 그것을 사용하는 독일조차도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심지어는 에니그마를 가지고 있어도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기에 독일군은 모든 통신에 에니그마를 사용하고 있었다. 매일 자정이 되면 기계의 설정이 바뀌었고, 연합군은 아침 6시가 되면 첫 메시지를 가로챌 수 있었다. 그 메시지를 통해 자정이 되기 전인 18시간 안에 암호를 해독해야만 했다.
암호 해독에 진전이 없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자정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을 터였다. 그런 고충을 알기에 동료애가 더욱 끈끈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앨런은 달랐다. 그는 하루 분량의 암호를 해독하기보다 모든 암호를 완벽하게 해독할 기계를 만드는 데만 열중했다.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앨런이 팀원들에게 눈엣가시인 건 당연했다. 그리고 앨런이 자신이 개발한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윈스턴 처칠에게 편지를 보내 주도권을 잡게 된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미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앨런은 자신의 일을 했고, 일손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사람을 뽑기 위해 크로스워드 퍼즐을 신문에 실어 똑똑한 조안과 함께 일하게 된다.
자신에 대해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앨런은 천재가 분명했고 관심이 있는 것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대놓고 괴롭힘을 당했고 에니그마 해독을 하면서는 팀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그런 앨런에게는 크리스토퍼와 조안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크리스토퍼는 그의 내면을 보고 진심으로 대했고, 조안은 지식으로 우정을 쌓아 서로에게 성별을 뛰어넘는 관계가 되어 그녀 덕분에 틀어졌던 팀원들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다. 앞이 꽉 막혀 나아갈 수 없을 때 크리스토퍼와 조안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눈앞의 미래로 이끌었다.
그들이 앨런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든 기계에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붙이고 조안을 이성적인 감정이 아닌 인간적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했으니 말이다. 원동력이 되어준 두 사람이 있었기에 앨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앨런은 제2차 세계대전을 2년 단축하고, 1400만 명의 사람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가 평범한 천재가 아니기에,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기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앨런이 너무 안타까웠다.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절망뿐인 상황에도 크리스토퍼와 같은 말을 하는 조안의 마지막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 앨런이었다. 그 두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앨런 튜링은 사후 59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동성애에 무죄 판결을 받고 복권됐다고 한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전쟁 영웅을 그런 이유 때문에 후세에 알리지 않았다니 영국도 참 대단한 나라지 싶다.
앨런 튜링이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다른 시대, 현대에 좀 더 가까운 때에 태어났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일의 암호를 해독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실존 인물인 앨런 튜링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섬세한 감정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다. 마지막까지 놀라운 연기에 안타까운 모습까지 보여줘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한 후 2015년의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을 못 해서 찾아보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이 대부분 받았길래 바로 수긍했다.(이건 아무도 못 이겨..)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한 그의 짧은 삶은 정말 쓸쓸했다. 하지만 암호학자, 수학 천재, 그리고 컴퓨터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 덕분에 당시엔 전쟁이 빨리 끝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현재에는 보다 발전된 편한 세상을 누리는 거라 생각하니 감사하고 왠지 또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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