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기 싫었어. 다시 와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고”영화 1917. 리뷰
줄거리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에게 하나의 미션이 주어졌다. 함정에 빠진 영국군 부대의 수장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하는 것! 둘은 1600명의 아군과 '블레이크'의 형(리차드 매든)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사투를 이어가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선 병사들에게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도 없던 1917년의 어느 날이었다. 보급품을 나르거나 최전방에서 독일군을 주시하거나 혹은 무기를 들고 전투에 나서거나 하다가 마침 교대 시간이라, 달디 단 꿀과도 같은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 근처에서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풀밭에 가만히 누워서 혹은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에 앉아서 눈을 감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그렇게. 전장의 한 가운데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언제 울릴지 모르는 총성을 제외한다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폭탄을 제외한다면,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전투기를 제외한다면 전쟁 중이라는 것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지극히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따스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휴식은 찰나와도 같았다. 한 병사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블레이크, 블레이크.
같이 갈 한 사람을 함께 데리고 오라는 말에 블레이크는 곁에 있던 스코필드를 깨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임무이겠거니 생각했고 그냥 그가 곁에 있었을 뿐, 딱히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친 얼굴로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는 병사들, 바삐 식사를 준비하는 병사들, 부상을 입은 병사들,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싣고 이동하는 병사, 전투 배치를 준비하는 병사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참호였다. 방호벽이 점차 높아짐에, 전쟁이 한 발짝 더 가까지 다가와 있음이 느껴졌다. 둘러맨 총기의 끈을 한 번 꼭 쥐는 두 병사의 손과 눈에, 입매에 긴장이 역력했다. 재촉하던 걸음을 멈춘 그곳에서 두 병사가 만난 이는 ‘에린무어’ 장군이었다. 임무가 떨어졌다.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되었으니, 철수한 독일군의 참호를 지나 함정에 빠진 2대대의 수장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하라는 임무였다.
“장군님, 저희만 갑니까?”
“지옥으로 가든 왕좌로 가든 홀로 가는 자가 가장 빠른 법”
임무는 하나, 싸워야 할 것은 시간
철수했다고는 하나, 위험 부담은 여전히 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대치중이었던 독일군이다. 정말로 철수를 했다고 해도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나타나고 터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부여받은 임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블레이크의 형을 포함한 1,600명의 아군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단 8시간,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할 거리는 15km.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임무였다. 목숨을 내놓고 가는 것과 다름없지만 매켄지 중령을 만나 명령서를 전달하기 전에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됐다.
자세를 낮출 것, 총기에 주의할 것. 최전선에 자리한 요크셔 연대의 참호는 여기저기 폭격 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부상을 입은 병사들 또한 가득했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철수했다는 독일군이 여전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이동하여 마침내 최전선의 최전선에 선 두 병사의 앞에 놓인 것은 질척이는 땅, 곳곳에 자리한 물웅덩이, 말과 사람의 시체, 들끓는 파리 떼, 쥐 무리,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지나는 아군의 정찰기, 이어지는 지독한 고요 그리고 불길하고도 위험한 미지였다.
“너도 들었잖아. 독일 놈들 철수했어.”
“근데 수류탄을 줘?”
무수한 가능성과 아이러니 속에서
임무 자체는 단순했다. 또한 명확했다. 철수한 적군이 먼저 지나간 땅을 거쳐, 2대대의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서를 전하라는. 그러나 두 명의 병사 앞에 펼쳐진 무수한 위험은 임무와는 달랐다. 단순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았다. 어떤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죽어서 실패하거나, 시간을 놓쳐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성공했지만 명령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실패하거나 하는 그런 것들.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두려움과 분노와 원망이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왜 하필 우리였을까. 왜 하필 나였을까. 이제 와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의지할 곳은 서로 뿐인 두 병사. 밀어주고 끌어주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두 병사의 모습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아프게 쿡쿡 찔렀다.
서서히 그러나 거세게 몰아치는 영화
<007> 시리즈의 ‘샘 멘데스’ 감독과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이 만나,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탄생시켰다. 시사회로 먼저 만난 영화 <1917>의 이야기다. ‘봉준호’,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코세지’와 경합하여 감독상을 수상했다더니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전체를 잡아서 보여주기 보다는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을 통해 극의 중심에서 전개를 이끄는 두 병사의 시선이나 등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화면을 채우다 보니, 두 병사만큼이나 관객인 나에게도 앞에 놓인 것이 미지로 다가왔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니 절로 긴장하게 됐다고 해야 하나. 꼭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초반부 독일군의 참호에 갓 도착했을 때에 정말로 철수한 것이 맞는지 수색하는 장면과 후반부 불타오르는 폐허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후반부의 추격전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이걸 어떻게 찍었나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경이로움을 자랑했다.
<덩케르크>, <저니스 엔드>, <그래비티>와 닮았다. 차가운 톤을 유지하는데, 그 안은 실로 뜨겁다는 점과 마치 화면 안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미지와 긴장으로 채워진 화면을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여러 가지 소리와 음악으로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그런 걸까. 그 안을 누비는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에 당시의 시대가, 현장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어 그런 걸까.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앤드류 스캇’, ‘리차드 매든’ 등 굵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한다는 말에 배우에 대한 기대를 가득 품고 본 영화였는데, 몰입감과 생동감, 체험감이라는 삼박자가 연기와 사운드와 연출로써 딱 맞아 떨어지니 해당 배우들의 등장보다도 영화 자체가 가진 임팩트가 훨씬 커서 기대 그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어. 다시 와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고”영화 1917.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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