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 대장염’이 덮친 아베, 일본의 미래는?
미국, 일본 동시 리더십 교체시 동북아 대 혼란 가능성
지난 24일로 2799일(7년 8개월)이라는 역대 최장 총리 임기를 기록한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궤양성 대장염’으로 인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998년 중의원 시절 신약 '아사콜'을 처방 받으면서 증상 개선으로 총리가 되어 1차 내각을 지내던 도중 스트레스로 인해 지병이 악화돼 자진 퇴진해야 했었다.
‘궤양성대장염(潰瘍性大腸炎, ulcerative colitis)’이란 “대장의 점막과 점막 아래에 광범위한 궤양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계속 재발하는 것이 특징인데 급성기에는 고열과 설사, 점혈변(粘血便)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이때 식욕부진까지 겹쳐 몸이 매우 쇠약해진다.
지금 아베 총리가 바로 이 때문에 건강에 이상을 보이면서 정상적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의 ‘고가 고(古賀攻)’ 전문 편집위원도 26일 사설 칼럼을 통해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 격무 등은 (1차 내각 때와) 겹친다"며 아베 총리의 건강이 악화됐던 당시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6월 게이오대 병원 정기 검진 이후, 지난 17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10시간 동안 추가 검진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아베총리가 현재 게이오대 병원에서 '혈구성분 제거 요법(GCAP)'으로 불리는 특수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 8월 27일호가 제기한 '혈구성분 제거 요법(GCAP)‘이란 혈액을 몸 밖으로 꺼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한 백혈구를 제거한 다음 체내로 되돌리는 혈액 정화법을 말하는 것으로,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스테로이드 약제로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염증이 생겼을 때 받는 치료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건강 문제가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해명을 한다. 더불어 코로나19 정국을 헤쳐 나가는 방안에 대해 대국민 설명도 함께 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지난 6월 18일 이후로 처음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아베총리의 건강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
그런데 우리가 일본의 아베 총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아베 총리는 건강 문제로 인해 빠르면 9월중에 사임을 거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신문이 일본의 소식통을 통해 취재한 바에 의하면 28일의 기자회견에서는 사임을 말하지 않을 것이나 지금 건강 상황으로 볼 때 내년 임기까지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이 대세라는 것이다.
문제는 올 하반기에 미국의 대선(11월 3일)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나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국의 리더십이 바뀌는 상황에 일본도 동시에 리더십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과 일본의 동시 리더십 교체는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리더십 또한 에전같지 않다. 10월 5중전회에서 최소한 권력분점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렇다면 미·중·일 모두 리더십의 변화가 생기면서 동북아시아 정책 또한 대대적인 혼돈기에 접어들 수 있다.
당장 대(對) 북한 문제도 그렇고 미중간의 패권전쟁의 방향, 중국과 일본간의 충돌 등이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아베 총리의 안위에 대해 눈여겨 보는 것이다.
[아베총리가 일본 정계에서 갖는 상징성]
그렇다면 왜 ’아베‘인가? 도대체 아베 총리가 일본에서 갖는 영향력이나 정치적 파급력이 어느 정도 되기에 아베 총리의 사임이 그렇게 큰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는가?
이를 알려면 일본의 정치 구도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일본은 참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움직이고 있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내만 해도 3개 정도의 세력이 있고 여기에 연립여당 공명당이 있다.
이외에도 야당으로 한때(2009년부터 3년간) 집권했으나 지금은 자민당의 대체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못하면서 집권 능력이 사라진 입헌민주당이 있다.
민주당은 집권 내내 일본인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로 이어졌다. 미국·중국과 외교 마찰을 빚는가 하면 엔화 가치 급등으로 기업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2011년 3월 11일 사망·실종자 2만여 명에, 원전 폭발이 겹친 끔찍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정권은 아마추어 정부의 민낯을 보여줬다. 그 후로 존재감을 잃어버린 정당이 되었다.
이외에도 국민당, 사회당, 공산당 등 다양한 정파 세력이 존재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아베총리가 사임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자민당 내에서 또다른 인물로의 교체이지 다른 정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3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각 당 지지율을 보면 자민당 29%, 제1야당 입헌민주당 9%, 제2 야당 국민민주당 2%로 여전히 집권 자민당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래서 ’정권교체‘라는 말 대신에 ’포스트 아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정치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총리는 자신들의 정파 이익만 대변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지지세력만 대변하다가는 일본이 무너진다. 이러한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포용하면서 그야말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자라야 총리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그의 숙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전 총리의 2798일을 넘어 역대 최장 총리 재임 기록을 갖게 된 것도 자민당이라는 집권정당을 넘어 다양한 세력들을 존중하면서도 국익을 가장 중시하는 정책을 펼쳐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아베는 ”일본의 최우선되는 국익은 미국과의 일치된 관계“라는 점을 가장 앞세우면서 외교를 해 왔고 더불어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기업 중시 정책을 통해 내수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켰고 청년들 일자리 창출은 기록적이라 할 정도로 획기적 변화도 가져왔었다.
아베 총리는 최소한 일본내의 세력들을 하나로 묶어 조화를 이루면서 국익을 위해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아베의 위치는 범접 불가능이라 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그런 아베가 병이 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과연 아베가 사임하게 되면 아베만큼 일본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에 모여져 있다.
일단 총리 최측근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25일 “총리가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며 조기 퇴진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 마이니치신문은 자민당 실력자의 말을 인용해 “총리가 병을 이유로 조기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포스트 아베는 누가 논의되는가?]
일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 총리의) 임기가 1년도 더 남은 시점에서 ‘포스트아베'에 대해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렇다고 ’포스트 아베‘에 대해 일본 정계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고노다로(河野太郞) 방위상
가장 먼저 포스트 아베로 거론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고노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이다. 외무상을 거쳤던 고노다로는 현재 57세다. 집안도 좋고 외교쪽에 업무 능력도 있으나 경제 부문에 대한 능력은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일본내에서는 일본의 다양한 세력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부친이었던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소가 당시 군 당국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고,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이는 고노 다로의 부친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26년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는 '고노 담화'로 한일 갈등을 완화시켰다면, 아들은 2019년 7월의 '고노 담화'를 통해 양국 관계를 더욱 경색시켰다.
이 말은 만약 고노다로 방위상이 총리가 된다면 한일관계의 회복은 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노 방위상은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이달 중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상공을 시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그동안 일본에서는 방위상이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경우 아베 총리와 노선은 완벽하다 할 정도로 일치한다. 그동안 아베 총리를 최 근접거리에서 보좌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보스(Boss)보다는 2인자 기질이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여론들이 있다.
그런데 스가 관방장관이 최근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한마디로 "총리 욕심이 없는 니카이 간사장이 누구와 손잡느냐에 따라 차기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지난 18일 TV에 나와 "(자민당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니카이 간사장이 당을 확실히 주도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베‘로 자리를 굳혀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집권 자민당 정조회장
유력 총리 후보이기는 하나 존재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는 25일 “집권하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밝힌 뒤 평화헌법의 근간인 9조의 4개 항목을 고치는 개헌을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민영방송 닛테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퇴근 후 직접 장을 보고 아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방송했는데 서민적 면모 강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인기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치 행보가 아베 총리의 정적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특히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당내 기반이 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내 실력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 만나며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포스트 아베에게 주어진 과제]
현재 포스트 아베로서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는 인물은 누구일까?
25일 아사히신문은 “유력 총리 후보인 기시다와 이시바 모두 결정타가 부족해 스가 관방장관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판세를 분석했다.
누가 되든 포스트 아베는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진 내수 경제를 살려야 한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일본의 경제적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더 타격이 크다. 이를 다시 추슬러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놓여 있다.
뿐만 아니라 대외 정세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 그리고 홍콩 문제 등으로 인한 대 중국 문제도 미국과 손을 맞춰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영유권 분쟁 문제를 포함해 강력하게 맞설 수 있는 ’포스트 아베‘는 누구인가에 일본인들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마땅한 인물이 눈에 확 띄지 않는다는데 일본의 고민이 있다.
[아베 총리, 최대한 시간 끌면서 소프트랜딩 시도할 듯]
아베 총리의 건강이 이렇게 악화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147일 넘게 하루도 휴식 없이 달려온 결과라는 것이 총리실의 이야기다. 그만큼 스트레스와 피로가 겹쳐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츠오(山口那津) 대표는 26일 “아베 총리가 직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더욱 건강이 악화되었다”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총리의 중요한 직무”라고 강조한다. “리더로서의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좀 더 일정에 신축있게 대응하면서 건강을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아베 총리도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 나가겠다”고 24일 말한 것이다.
일단 아베총리는 25일 오전 10시 3분에 출근해 각의에 참석한 후 오후 6시까지 8시간 내리 업무를 봤다.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있었던 8월 15일을 제외하면 그가 오전 시간대에 출근한 것은 8월 11일 이후 2주 만이다.
각의에 참석했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은 각의가 끝난 후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건강 상태는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평소 모습과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만약 치료과정에서 꼭 휴식이 필요하다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에게 총리 대행을 맡긴 후 열흘 정도 휴식을 취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아사히가 25일 온라인 기사에서 밝힌 배용이 그렇다.
분명한 것은 지난 1차 사임 때같이 쉽게 그만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주간 아사히도 "한번 그만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집념이 있다. 쉽게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지금 아베총리에게는 두 가지의 큰 과제가 있다. 하나는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7.8% 급락한 경제위기가 우선적 과제이다. 코로나19의 재유행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지만 이에 대한 긴급 처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하나가 내년 7월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개최되고 아베 총리가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이보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한일관계다. 한일관계는 지금 ’적대적 공생‘의 관계다. 한국은 ’토착왜구 프레임‘으로 국민 편가르기를 하고 있고, 일본은 일본대로 반한(反韓) 감정을 국내정치에 최대한 이용한다. 언제까지 이 악순환이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경축사에서 일본과의 대화를 거론하고 나섰지만 정작 집권세력은 오히려 반일 캠페인에 불을 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이젠 반일을 넘어 반미로 간다.
정신차려야 한다.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편가르기 사고(思考)로는 결코 국익을 챙길 수 없다.
어찌되었건 아베는 이제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간다. 내년 임기 때까지 갈지, 아니면 더 빨리 사임을 하게될지 모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아베총리는 소프트랜딩으로 다음 정권을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기왕이면 한일관계도 다시 회복해 놓고 사임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한일 양국 지도자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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