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도 간접적으로 암의 위험이 있는 경우가 있다. 석면·코크스 · 석유·니켈·비소 · 크롬 등 산업현장에서 흔히 취급하는 물질들이 직접, 간접으로 여러 암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직업성 암은 금방 나타나는 게 아니고 발암성 물질을 상당 기간에 걸쳐 마시거나, 그것이 피부에 닿거나 한 다음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직업성이란 사실을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직업성 암의 발병
최초의 직업성 암은 약 200년 전 영국의 의학자 폿(P. Pott)에 의해 밝혀진 굴뚝 청소부들의 음낭 암이었다. 굴뚝 청소를 하는 중에 검댕이 그들의 음낭에 축적되어 암이 발생했던 것이다. 직업이 유발하는 암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 공장 근무자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농약 등 각종 화학물질을 많이 쓰는 농부도 폐암·간암·방광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광산 근무자, 특히 우라늄 광산 근무자와 석면 취급자, 아마로 된 선박용 동아줄을 만드는 사람들은 발암성 먼지로 인해 폐암에 잘 걸린다.
또 발암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공장 매연이나 자동차 배기가스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벤조피렌 류나 탄화수 소류 등 발암물질이 몸에 들어와 각종 암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15%인 6만여 명이라고 할 때, 그중 5% 정도인 약 3천 명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내적 요인
암은 유전병이 아니다. 하지만 암에 걸리기 쉬운 경향은 유전될 수도 있다. 인체의 정상세포에는 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지닌 암 유전자가 있다. 암 유전자의 역할은 암세포를 무한히 증식하도록 지시해 새로운 암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암 유전자는 평상시에는 약화 또는 정지된 상태로 있다가, 여러 가지 발암요인에 의해 활성화되면 비로소 암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암으로 4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는 망막 아세포증, 유전성 대장암 등 극히 희귀한 종류를 제외하고 암은 유전되는 병이 아니다. 그러나 암에 걸리기 쉬운 경향은 유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유전적인 소인을 가진 사람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환경 인자와 접촉되었을 때 더욱 쉽게 암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전암 상태(前態)라는 것이 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대장이나 직장에 생기는 용종증(腫症)은 유전되면서 쉽게 암으로 변하며,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유전병 환자는 피부암이 흔히 발생한다. 일란성쌍둥이 중 한 아이가 백혈병에 걸리면 다른 한 아이도 백혈병에 걸릴 가능성은 수십 배나 높은 것이다.
이와 같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되는 암은 약 6%로 추정되며, 염색체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 중에서는 암의 발생빈도가 확실히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가족 내에 여러 명의 암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유전적 요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폴레옹 집안은 암이 많은 가문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동생 등 6명이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자신의 사인은 위암이 아니었다. 암은 이론적으로 보면 인구 4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이기 때문에 한 가족 중에서 몇 명이 암에 걸렸다고 해도 통계학적으로 볼 때 특별하다고 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한집안 식구들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을 해 온 만큼 공통된 환경적 요인이 암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반드시 유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간염을 앓은 후 사망한 부모가 있을 때 그 자식들이 간암에 걸렸다고 해도 이것은 감염이 전염된 후 간암으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유전적인 경우는 매우 미미하다.
인종. 민족. 지역과 암의 관계
인종, 민족, 지역 등도 암을 유발하는 내적인 요인 암은 지역이나 인종·민족· 전통 · 생활습관 등 여러 요소들의 복합적인 작용에 따라 그 발생빈도에 차이가 있다. 영국이나 미국 등 구미에서는 폐암·유방암 · 직장암·전립선암 등 이른바 선진국형 암의 발생빈도가 높은 데 반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위암·자궁암·간암·폐암 등의 순으로 발생되고 있다. 피부암은 또 적도에 가깝고 태양광선이 강한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백인종은 황인종이나 흑인종에 비해 피부암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태양의 자외선에 대한 색소의 상호작용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자궁암이나 음경암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의 전통인 할례와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스메그마(피지선의 분비물)의 자극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암 발생의 주범일 수도 있다.
아직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발견된 바는 없지만, 많은 암 전문 의학자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암 발생의 주범으로 꼽고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집단일수록 지나친 흡연, 음주 등 암 유발인자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는 암을 일으키는 스트레스의 간접적 역할을 암시한 것이고, 지나친 스트레스가 인체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역시 만만치 않다.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시상하부(視上下部)는 인체의 자율신경계와 호르몬을 관장하는 최고사령부로서, 자동적으로 호흡·맥박·혈압·소화작용 등을 생존에 적합하도록 조절해 준다. 시상하부에는 개체마다 일정하게 세팅된 틀이 있어 규칙적으로 호르몬의 분비와 자율신경의 흥분, 억제를 조절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 시상하부가 콩팥 위에 있는 부신(副腎)에 스트레스 대처 호르몬, 즉 코티솔과 이드 레날 린을 분비하도록 명령한다. 코티솔과 아드레날린은 평상시보다 20배나 많이 분비되어 외부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게 신체 각 부위를 자극해 흥분시키는 역할을 한다.
혈압과 맥박수, 호흡수를 올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며, 근육에 많은 혈액을 공급하는 반면 다른 내장으로의 혈액공급은 줄이며, 위장관의 운동을 멈추게 하고 소화액의 분비를 줄 여음 식물을 소화시키는 등의 급하지 않은 작업을 모두 억제한다. 이때 억울하게 함께 억제되는 것이 바로 암 발생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면역체계라는 것이다.
T림프구는 인체 면역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균 같은 외부 침입자는 물론 노화되거나 암세포로 변형된 세포를 찾아내 죽이는 야전군 노릇을 하는 자연 살상(Natural killer) 세포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 시상하부가 우리 몸이 항상 비상사태인 것으로 착각하여 코티솔 등을 과잉 분비하게 되며, 이 때문에 자연 살상 세포의 수는 물론 기능도 약화되어 암 발생의 감시체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로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 즉 순종적이고 고독한 사람', 화를 잘 안 내고 남을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암 발생이 더 많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암은 머리카락과 손톱·발톱만 빼고 우리 몸 어느 곳에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그 발생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르지만, 암세포는 원래 정상세포가 어떤 원인에 의해 변화한 것이므로 처음에는 특별한 증세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암세포가 증식해서 그 주위의 조직을 압박하고 사방으로 전이하여 신경섬유를 침범하거나, 혈관을 침범해서 출혈을 일으키는 경우와, 또 암세포의 번식으로 전신의 영양이 고갈되었을 경우에 증세가 나타나는 일이 많다. 아무리 빨라도 암세포 수가 10억 개 이상으로 늘어나 그 무게가 1g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임상적으로 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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