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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도” 와인의 역사 2편. 브르도 와인의 번영.

dramagods99 2021. 2. 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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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도 와인의 번영


18세기에는 아메리카 섬들, 쌩도미니끄와 서인도제도 작은 섬들이 보르도 와인 수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프랑스 식민지 지역을 무역중개지로 하여 보르도 와인은 미국시민혁명 시기 때까지 미국시장에서 번성하였다.

한편 그당시 영국은 보르도 와인을 예전처럼 많이 수입하지 않았지만, 런던의 상류층들이 찾는 고품질의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에 처음으로 마개로 와인병을 밀봉하여 유통하게 된다.

위기와 번영은 함께 오는 것일까? 19세기 중반에 위협적인 오이듐oidium 균의 질병이 포도원을 덮쳤으나 1857년 황 성분을 살포함으로써 이 병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지롱드 포도원들은 오이듐균의 위기를 벗어난 동시에 1855년 지롱드 지방 내 메독과 쏘테른, 그라브 지역의 샤또 오브리옹 Haut-Brion 이 그랑 크뤼 끌라쎄 등급이 매겨지는 영광도 갖게 된다.


또한 그 당시 유럽의 산업혁명은 네고씨앙과 와인 생산업자들이 자연스럽게 동반자적 관계를 갖게 되었고 보르도 와인 산업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였다.

1865년부터 1887년까지 보르도 지역에서는 최고의 와인이 생산되었고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 벨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으로의 수출은 절정을 이루었다.

위협적이었던 오이듐균 질병이 있은 지 25년 후에는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는 진딧물인 필록세라 Phyllovera 가 처음 보르도에서 발견된다.

1865년부터 1869년까지 포도나무에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1882년에는 보르도 전 지역에 퍼져 모든 품종들에서 무차별하게 나타났다.

결국 보르도의 포도원들은 해충에 강한 미국 품종의 뿌리에 보르도 포도품종을 접목시키는 처방책의 발견으로 재건하게 된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필록세라의 위기로 와인의 품귀현상이 일어나자 와인 밀조가 성행하고 가격이 폭락하는 등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롱드인들은 와인 원산지에 대한 정부 법령 수립에 참여하여 명칭 영역을 한정하게 된다.


1936년 프랑스 INAO 국립원산지명칭연구소의 출범으로 원산지 범위가 완전히 이루어졌고, 상세한 생산조건을 기술하고 적용을 강제하는 “통제 법령”에 의한 AOC 원산지 통제 명칭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조건은 지리적 범위, 포도품종, 수확량, 알코올 도수, 재배 및 양조 방법이 포함되어 있으며 보르도 와인의 97%가 AOC에 속해있다.

이렇듯 20세기는 규정을 마련하는 시기로 시작하면서 새로운 그랑 크뤼 끌라쎄 등급은 그라브 지역에 이어 1955년 쌩떼밀리용에도 시작되었다.

1956년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강추위로 인하여 지롱드 포도원의 15%정도가 냉해를 입어 많은 포도 재배자들은 포도나무 재배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는 포도재배자들에게 현대 화에 박차를 가하는 기회가 되었다. 농가의 숫자는 줄어든 대신 재배 면적은 확장되었고 기계화 · 전문화되어 갔다.

또한 청포도 품종에서 적포도 품종 재배로 전환되기 시작했
고 메독과 그라브 지역에 이어 리부르네와 꼬뜨 지역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일어났다.

3편에 이어서.


‘브르도 와인의 역사’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 https://nunoex1978.tistory.com/m/449

‘브르도 와인의 역사’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보르도가 세계적인 포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다. 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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