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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빈 윌리엄스의 비극적인 삶

by dramagods99 202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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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의 비극적인 삶

로빈 윌리엄스는 정말 웃겼습니다. 로빈은 많은 것들을 했지만 주로 했던 코미디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클럽에서는 스탠드 업 코미디를 선보이고 TV에서는 과감하게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죠. 코미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로빈은 베테랑 배우이기도 합니다.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랐고“굿 윌 헌팅”으로 수상도 했습니다.

로빈의 연기력은 마음에서 나왔을지도요. 혹시 광대 파글리아치 아시죠.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파글리아치를 보고 힘내라고 제안하는데요. 알고보니 환자가 바로 파글리아치였습니다. 이 광대는 우울증이 있지만 코믹 연기 때문에 괜찮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죠. 로빈은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특유의 유머감각에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 로빈은 인기도 많았고 부유했죠. 로빈의 아버지는 포드간부였고 로빈은 방이 40개 딸린 집에서 살았습니다. 가정부도 있었다네요. 로빈은 사립학교을 다녔고 우수한 성적을 받았죠. 다양한 활동도 하여 학생회장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로빈을 재밌고 친절한 친구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로빈은 돈많고,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있고, 재미있고, 똑똑하고 인기도 많았죠.

하지만 실상은 좀 달랐는데요. 로빈은 자주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가정부가 유일한 친구였죠.

줄리어드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지만 로빈은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둡니다. 그리고 스탠드 업 코미디를 시작했죠. 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70년대 로빈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클럽에서 활동했습니다. 1979년에는 그래미상 최우수 코미디 앨범상을 수상했죠. 이는 로빈이 수상한 첫번째 그래미상입니다. 4년간 방영된 ABC 시트콤 “Mork&Mindy”에서는 외계인 Mork를 연기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데요. 로빈은 잘나갔습니다.

70년대 후반 코미디에서는 마약이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로빈은 코카인과 알코올에 중독되었죠. 밥 데이비스는 마약에 빠져있는 로빈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로빈은 숟가락에 있는 코카인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아 했습니다. 로빈은 코카인을 끊으려고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감독 하워드 스톰은 로빈이 밤새 마약을 하며 술을 마셨다고 말했는데요. 다음날 만신창이가 됐다고 합니다.

1982년, 로빈의 절친인 존 벨루시가 헤로인과 코카인을 섞은 일명 스피드볼 과다복용으로 사망합니다. 로빈은 당일 존과 같이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아이를 갖게 된 로빈은 마약과 술을 끊기로 결심했죠. 로빈은 존의 죽음이 연예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마약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건이었죠.

그러나 이 시기로 인해 로빈은 우울증을 겪게됩니다. 탈출구로 자전거를 타다 자전거 가게 주인 토니와 친해지는데요. 로빈은 토니에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코카인보다 백배는 낫다며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네요.

로빈이 조울증이 앓았다는 말이 있는데요. 하지만 2006년 로빈은 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죠. 한가지 확실한 건 로빈이 끊임없이 중독과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로빈은 맨정신으로 20년을 보냈지만 2003년 술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영화 “빅 화이트”촬영 당시 로빈은 외롭고 두려웠했죠. 로빈은 처음에 맛만 보려고 했지만 그 양이 점점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일주일도 안되서 술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종 소리 같았다고 했죠.

가족들이 쓴 소리를 해 로빈은 2006년 재활원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다시 술을 마셨고 2014년 또다시 미네소타 하이즐덴 재활원에 들어갔습니다. 로빈이 다시 술을 시작한 건 우울증과 자신의 쇠약해진 몸 때문일 수 있습니다.

2013년 말부터 로빈은 루이소체치매를 앓기 시작했는데 로빈이 죽은 후에야 확인되었죠. 로빈의 부인 수잔은“남편의 뇌 속 테러범”이라는 슬픈 책을 썼는데요. 로빈의 가슴 아픈 마지막 날들을 글로 표현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 병의 초기 징후는 둘의 결혼 2주년 기념일 무렵인 2013년 10월에 시작되었죠. 로빈은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 불면증, 가슴통증, 소화기관 통증, 손 떨림, 경련 등에 시달렸습니다. 이런한 증상들은 로빈의 과거 어깨 부상 때문일거라고 일축했습니다.
이 후 더 악화되어 로빈은 편집증, 망상, 기억 상실과 같은 더 심각한 증세를 겪었습니다.“박물관이 살아있다 3”을 촬영할 때 로빈은 대사를 까먹곤 했고 많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죠. 로빈은 근거없는 두려움과 극도의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수잔의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로빈은 자신이 미쳐가는 것을 알았지만 괜찮은 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로빈도 이를 숨길 수 없었죠. 로빈은 절뚝거리며 느리게 걸었습니다.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할 말을 까먹었습니다. 왼손도 계속 떨었죠. 더 이상 거리와 깊이를 판단할 수 없었고 가끔 움직이지 못해 얼음이 되곤 했습니다.

수잔에게 잘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로빈은 8월 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병에 대해 쓴 편지를 남기고… 수잔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장 사랑받고 재능있는 배우가 영영 떠난 건 충격이었죠. 로빈은 자신의 병을 잘 숨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로빈은 부인과 세 아이들 작, 젤다, 코디와 함께일 겁니다. 코디는 로빈의 68번째 생일날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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