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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내현적 자기애. 나르시즘. 나르시시즘.

by dramagods99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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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현적 자기애. 나르시즘. 나르시시즘.

사전적의미

자신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기애(自己愛)라고 번역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자기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를 보듯 하고, 또는 스스로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거울 앞에 오랫동안 서서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황홀하여 바라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나르시시즘이다.
그러나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S.프로이트가 이를 정신분석 용어로 도입한 뒤부터이다. 그에 의하면 자기의 육체, 자아. 자기의 정신적 특징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것, 즉 자기 자신에게 리비도가 쏠려 있는 상태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유아기에는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상태를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자라면서 리비도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 외부의 대상(어머니나 이성)으로 향한다[對象愛]. 그러나 애정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유아기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2차적 나르시시즘이다. 프로이트는 조현병(정신분열병)이나 파라노이아[偏執病]는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였다.


자존감과 나르시즘



오랫동안 심리학자들은 공격성이 낮은 자존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다. 사랑이나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행해진 여러 연구결과들은 자존감과 공격적 행동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공격적인 사람들이야말로 자존감이 높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왜 그럴까?Donnellan이라는 학자가 나름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자존감을 나르시즘과 분리해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높은 자존감일수록 공격성이 없고, 나르시즘이 강할수록 공격성과 연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전 학자들은 자존감과 나르시즘을 구분하지 않고 연구를 했기에 혼란된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나르시즘은 흔히 ‘자기애自己愛’라는 말로 번역된다. 이 번역을 오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르시즘이 엉뚱하게 '자기사랑'으로 번역되다보니 자존감과 더욱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나르시즘은 자기사랑이 아니라 ‘자아도취’이자 ‘자기몰두’ 상태를 말한다. 굳이 자기애를 쓴다면 '병적'이라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 우리는 나르시즘과 자존감을 구분해야 한다. 겉으로는 둘 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할뿐더러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상태라면, 나르시즘은 이상적인 자아만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에게 몰두되어 있기에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정과 과시의 수단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 나르시즘은 특별한 사람에게 보이는 성격적 특성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 사회를 보면 시대적 특성이 되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빚을 내서라도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고, 소통이 아니라 자기과시와 자기주장이 넘쳐나고, 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내 자식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해야 하며, 어떻게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심이 팽배해진 것은 우리가 나르시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자신을 사랑하자고 외칠 것이 아니라 자기사랑과 나르시즘을 구분해야 한다. ‘대상애對象愛’와 ‘타인존중’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나르시즘을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집단으로 물 속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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